혼잡한 도시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2025년 현재, ‘여행’이라는 행위는 단지 어딘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로 돌아오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일본의 소도시들은 그런 물음에 조용하고 진실된 방식으로 답합니다. 이 글에서는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힐링 여행지를 소개하며, 여행이 단지 소비가 아닌 회복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전합니다.
휴식이 아니라, 회복이 필요할 때 떠나는 곳
현대인의 여행은 대부분 피로에 쫓겨 시작됩니다. 쉬고 싶어서 떠나지만, 일정은 바쁘고, 머리는 오히려 복잡해지기 쉽죠. ‘힐링 여행’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따뜻한 온천, 조용한 골목길을 떠올리지만, 그게 정말 회복이 되려면 중요한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일본의 소도시 중에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지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야마가타현의 긴잔 온천마을입니다. 오래된 료칸들이 강가를 따라 늘어서 있고, 밤이 되면 가스등 불빛만이 흐릅니다. 관광명소는 딱히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습니다. 다만 조용히 앉아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눈 내리는 강변을 바라보는 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곳입니다. 긴잔은 사람을 조용히 안아주는 도시입니다.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 시마네현의 유노츠 온천입니다. 작은 마을 하나에 온천 세 곳, 찻집 두세 곳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곳의 온천은 지친 몸을 아주 천천히 녹여줍니다. 핫스프링이라기보다는 회복의 샘에 가깝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야 할 이유가 없고, 정보를 찾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백이 많은 공간이 주는 위로는,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종류입니다.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느끼는가
관광지 중심의 여행이 주는 피로는 꽤 큽니다. 특히 SNS나 리뷰를 통해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는 여행은 대부분 ‘확인’에 그치고 말죠. 반대로 힐링 여행은 감각에 맡기는 여정입니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지금 뭘 먹고 싶은지, 어디에 머물고 싶은지—계획보다는 느낌에 따릅니다.
예를 들어 후쿠이현의 아와라 온천은 규모는 작지만 따뜻한 정이 남아 있는 마을입니다. 이곳의 매력은 ‘무엇이 있다’가 아니라 ‘무엇이 없다’는 점입니다. 조용한 골목길, 가게 밖으로 새어나오는 국물 냄새, 저녁이 되면 닫는 상점들. 이런 풍경들이 마음을 안정시킵니다.
또 다른 예로, 도카치 지방은 홋카이도 남동부에 위치한 평야 지역으로, 사람보다 말이 더 많은 넓은 땅입니다. 이곳은 농장 체험이 가능하지만, 꼭 뭔가를 체험하지 않아도 됩니다. 초원을 걷기만 해도 머릿속이 정리됩니다. 가끔은 “나 왜 이렇게까지 힘들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와쿠니 같은 소도시는 풍경이 아니라 ‘비워냄’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긴타이쿄 다리 근처를 걷다 보면 아무 말도 필요 없는 시간이 찾아오고, 강물 흐름에 따라 감정도 조금씩 정돈됩니다. 좋은 풍경이 꼭 감탄을 불러일으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런 도시들이 알려줍니다.
소도시에서만 가능한 ‘감각의 회복’
도시에서 살다 보면 오감이 무뎌집니다. 소음, 속도, 정보 속에서 살다 보면 작은 냄새나 바람, 소리에 둔감해지죠. 힐링 여행의 진짜 목적은 이 감각을 다시 깨우는 데 있습니다.
시코쿠의 우와지마는 그런 감각의 회복을 돕는 도시입니다. 작은 항구 마을이고, 이른 아침이면 어부들이 항구에 돌아와 생선을 옮기고, 고양이들이 그 주변을 어슬렁거립니다. 이곳에선 하루에 한두 장의 사진만 찍게 됩니다. 더 이상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오비 마을은 규슈의 남단에 위치한 조용한 사무라이 마을입니다. 이곳은 관광지이지만 철저히 느리게 구성되어 있어, 아무리 돌아다녀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잘 정돈된 돌길, 낮은 담장, 그리고 무척 조용한 거리. 자연과 사람과 건축이 나란히 걸으며 속삭이는 느낌입니다.
쓰루오카는 음식과 종교, 자연이 어우러진 도시입니다. 일본에서 드물게 ‘식’과 ‘기도’가 공존하는 여행지이며, 음식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곳입니다. 미슐랭 맛집도 많지만, 진짜 힐링은 동네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는 된장국 한 그릇일지도 모릅니다.
여행이 끝나고 더 나은 내가 남도록
힐링은 곧 회복이고, 회복은 나를 정돈하는 과정입니다. 2025년 현재, 여행은 점점 더 이런 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것보다 조용한 곳, 빠른 것보다 느린 시간, 남기는 것보다 비워내는 과정.
일본의 소도시는 그 변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다녀온 뒤에도 마음 한 켠에 조용히 남아, 다시 떠나고 싶게 만드는 도시들.
이번 여행이 누군가에겐 시작이 아니라 회복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회복이 오래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