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루손섬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다채롭습니다. 여행자는 대도시의 소음, 고원도시의 신선함, 오래된 골목의 정취까지 모두 경험하게 되죠. ‘마닐라, 바기오, 비간’은 루손의 핵심 여행지이면서 서로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실제 여행자의 시선에서 각 도시의 생생한 풍경과 팁을 담아 완벽 가이드를 소개합니다.
마닐라: 필리핀의 시작, 살아있는 시간
마닐라에 처음 내리면 뜨거운 공기와 복잡한 도로, 빼곡한 빌딩숲이 먼저 반깁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진짜 동남아의 활기가 밀려오죠. 대도시의 혼잡과 에너지는 이곳이 ‘필리핀의 모든 시작점’임을 단번에 실감하게 만듭니다. 첫날에는 무조건 인트라무로스에 가는 걸 추천합니다. 오래된 성벽 안쪽을 걷다 보면, 식민지 시절의 돌길과 붉은 벽돌, 열대식물로 뒤덮인 담장이 보이고, 산티아고 요새에 오르면 마닐라의 옛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냥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실제로 스페인과 미국, 일본 통치의 흔적이 남아 있어 골목 구석구석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닐라의 또 다른 매력은 현대적이면서도 친근한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마카티, BGC는 저녁마다 반짝이는 조명과 트렌디한 바, 감성 카페, 핫한 미술관이 넘치죠. 해질녘엔 마닐라 베이 산책로로 향하세요. 현지 가족들과 연인들이 다정하게 걸으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노을이 바다 위로 천천히 퍼질 때 여행자도 괜스레 마음이 말랑해집니다. 사실 마닐라에서는 길을 헤매기도 쉽지만, 길거리 음식 한 입과 예상치 못한 친절, 때론 예술가의 퍼포먼스나 스트리트 밴드가 낭만을 선사합니다. 대중교통이 혼잡하니 그랩(Grab) 앱을 미리 깔아두고, MRT/LRT도 한 번쯤 체험해보세요. 마닐라는 하루만 보고 떠나긴 너무 아까운, 계속 궁금해지는 도시입니다.
바기오: 시원한 공기, 초록 숲, 예술의 골목
마닐라의 더위에 지쳤다면 바기오로 올라가는 4시간 버스여행이 마치 짧은 ‘계절 여행’ 같습니다. 점점 높아지는 도로와 창밖으로 스치는 산자락, 그리고 바람결에 실려오는 시원한 공기… 도착하면 ‘여기가 정말 필리핀 맞아?’ 싶을 정도로 상쾌함이 다릅니다. 바기오의 번햄파크에서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현지 학생들, 가족 단위 소풍객,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핫초코 한 잔 들고 벤치에 앉아 책 읽는 여행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딸기농장에서는 직접 딸기를 따서 맛보고, 고원에서 자란 싱싱한 채소와 달콤한 잼, 브레드샵에서 막 구운 바게트에 듬뿍 발라 먹는 소소한 행복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인즈 뷰 파크에서는 바람에 실려오는 꽃내음, 현지 민속의상 입고 찍는 인생샷, 수공예품 마켓에서의 작고 특별한 쇼핑까지… 바기오엔 정말 여행자만의 시간이 흐릅니다. 예술마을과 북카페, 빈티지 카페에 들러 현지 아티스트의 전시도 감상할 수 있고, 캠프 존 헤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도시의 소음은 어느새 멀어집니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서, 해질녘 가디건이나 두꺼운 옷을 챙기면 더욱 좋습니다. 바기오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자기만의 감성에 집중하게 됩니다.
비간: 시간여행자의 도시, 문화유산과 골목
비간은 루손섬 서북쪽에, 구글맵만 봐도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를 직접 걸으면, 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을 받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크리솔로고 스트리트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여행자는 ‘시간여행자’가 됩니다. 낮에는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자갈길, 유럽풍 발코니, 나무 창살이 있는 옛집들, 그리고 도로 위를 달리는 전통 마차(칼레사)의 마부와 말 발굽 소리까지… 모두가 한 장의 오래된 그림처럼 이어집니다. 비간은 걸으며 즐기는 도시입니다. 어느 골목을 들어서도 작은 박물관, 수공예품점, 향신료 가득한 현지시장, 길거리 롱가니사(소시지) 굽는 냄새, 커다란 나무 아래 오래된 성당까지 이어집니다. 밤이 되면 크리솔로고 거리의 조명이 하나 둘씩 켜지고, 골목마다 음악과 사람 소리로 가득합니다. 소규모 야외공연, 로컬 밴드, 어린이들의 댄스 무대 등 예상치 못한 순간이 여행자에게 찾아오죠. 비간의 매력은 특별한 체험에도 있습니다. 직접 도자기나 가죽공예를 해보고, 에필라다(비간식 라이스랩)나 로컬 커피도 꼭 맛보세요. 마닐라·바기오와 비간을 연결하는 긴 버스 여행이 쉽지는 않지만, 현지인과 함께 새벽을 달리고, 잠시 쉬는 휴게소에서 파인애플 주스와 현지 간식을 맛보며, 여행의 여운이 깊어집니다.
마닐라, 바기오, 비간… 이 세 도시는 한 번에 돌아볼 수 없을 만큼 각자의 색이 뚜렷합니다. 대도시의 에너지, 고원의 여유, 시간여행의 감동까지, 실제로 걸어보고 부딪혀볼 때 비로소 ‘루손섬의 진짜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 남들과 비슷한 여행이 싫다면, 이 세 곳을 천천히, 오롯이 경험해보세요. 진짜 필리핀의 순간들이 오래도록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