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여행하기에 가장 망설여지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특별한 풍경을 품은 시기이기도 하다. 찬 바람 속 따뜻한 온천, 새하얀 설경 아래 고요한 고택, 하늘에서 소복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걷는 길. 이 모든 순간은 오직 겨울이라는 계절에만 허락된다. 국내에는 사계절이 뚜렷한 만큼, 겨울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행지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계절의 정서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세 곳의 겨울 여행지를 소개한다. 몸은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여행,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다.
설경이 만든 마법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겨울의 정선은 그 자체로 그림엽서 같다. 특히 아우라지 일대는 설경 속에 고즈넉이 자리한 작은 마을로, 마치 시간의 속도가 멈춘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우라지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지역으로, 눈이 내린 뒤 강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과 사람의 숨결이 겹쳐지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겨울철의 아우라지는 여행자에게 단순한 풍경 이상의 정적과 감정을 선사한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열차 ‘정선 아리랑 열차’는 눈 덮인 산과 강을 배경으로 달리며 영화 속 장면을 연출한다. 눈이 내린 날에는 마을 전체가 하얀 담요를 덮은 듯한 풍경으로 변하고, 기차 창 너머로 바라보는 풍경은 단순한 이동을 하나의 경험으로 만든다. 아우라지에는 오래된 정선역과 작은 민박집들, 정갈한 식당들이 어우러져 있어 하루쯤 머물며 느린 여행을 즐기기에 좋다. 뜨끈한 메밀국수 한 그릇, 그리고 하얀 설경. 그 두 가지가 어우러지는 순간, 여행은 더 이상 장소가 아닌 온도가 된다. 겨울 감성에 젖고 싶은 이들에게, 아우라지는 말없이 많은 것을 건넨다.
온천 vs 설산 — 충북 수안보온천과 강원도 대관령
겨울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테마 중 하나는 ‘따뜻함’이다. 차가운 공기와 대비되는 따뜻한 온천은 그 자체로 힐링의 상징이다. 충청북도 충주에 위치한 수안보온천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로, 수질이 좋고 접근성도 뛰어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온천욕과 함께 설경을 감상할 수 있는 숙소들도 인근에 많아, 한겨울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수안보온천의 장점은 탕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탄산온천, 황토온천, 노천탕 등 다양한 형태의 욕탕이 준비되어 있어 가족 단위부터 커플 여행자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 근처에 충주호나 문강계곡이 있어 짧은 트레킹 후 온천욕을 즐기는 코스로도 좋다. 반면, 강원도 대관령은 겨울이면 ‘설산’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대관령 양떼목장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겨울이 되면 하얗게 덮인 설원 위로 양들이 천천히 걸어다니는 모습이 이색적인 감동을 준다. 목장 내 산책로는 눈길이 조성되어 있어 눈밟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겨울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대관령 일대는 겨울축제나 스노우하이킹, 미니 스키 체험 등이 가능해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도 인기다. ‘따뜻한 휴식’을 원한다면 수안보온천이, ‘하얀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대관령이 더 잘 어울린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겨울은 전혀 다른 색으로 물든다.
겨울에도 살아있는 도시의 매력 부산 해운대의 또 다른 얼굴
겨울 여행이라면 강원도나 내륙지방만 떠올리기 쉽지만, 남쪽 바닷가 도시 부산도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해운대 일대는 여름의 열기와는 또 다른, 차분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해변은 한산해지고, 바다는 더 푸르고 깊어 보인다. 겨울 해운대의 하이라이트는 ‘해운대 빛축제’다. 11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는 해변 전체가 수천 개의 조명으로 밝혀지며, 밤바다 위를 걷는 듯한 감성을 선사한다. 낮에는 동백섬 산책로를 따라 바다를 감상하고, 저녁에는 광안대교 불빛과 함께 조명 아래를 걷는 이중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또한, 겨울철 부산은 다양한 해산물이 제철을 맞는 시기이기도 하다. 해운대시장, 민락수변공원 인근에서는 제철 회, 조개구이, 해산물 전골 등을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어 미식 여행으로도 훌륭하다. 해운대 근처에 위치한 온천장도 짧은 피로를 풀기 위한 코스로 추천된다. 차가운 바다와 따뜻한 음식, 밝은 조명이 어우러지는 해운대의 겨울은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겨울 바다의 매력을 찾고 있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부산의 겨울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겨울은 꽁꽁 언 풍경 속에서도 따뜻한 감정을 일으키는 계절이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느리게 흐르는 시간, 수안보에서의 따뜻한 물, 대관령의 하얀 들판, 그리고 부산 해운대의 조명 아래 걸음까지. 모두 다르지만, 공통된 감성은 '겨울'이라는 계절 안에서만 피어난다. 지금 떠나야 경험할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겨울은 금세 지나가지만, 그 안에서 만든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